범어사 성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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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청룡암시 목판

62.8×26.0㎝ : 내곽 40.2×26.0㎝ : 1573年

1판

刊記 : 萬曆 己酉(1573) 6月日 東谷 李子敏

 

梵魚寺 靑龍巖詩 木板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

지정일: 1999.09.03



 범어사 청룡암시 목판(梵魚寺靑龍巖詩木板)은 1608년(선조 41) 2월부터 1609년(광해군 1) 7월까지 동래부사를 역임한 동악(東岳) 이안눌(1571~1637)이 자필로 쓴 「청룡암 시(靑龍巖 詩)」와 「범어사 증도원산인(梵魚寺 贈道元山人)」을 판각(板刻)한 것이다.

 이안눌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덕수(德水), 시호는 문혜(文惠)이고, 호는 동악(東岳), 자는 자민(子敏)이다. 그의 나이 29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했다. 특히 그는 시를 짓는 데 뛰어나 문집에 4,379수의 많은 양의 시를 남겼다.

 이안눌은 동래부사 재임 시 자주 범어사를 찾았는데, 당시 범어사의 혜정 장로(惠晶 長老)가 이안눌에게 훗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시를 한 수 지어 바위에 새길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이안눌이 시를 지어 바위에 새긴 것이 바로 「청룡암 시」인데, 현재 범어사 지장전(梵魚寺 地藏殿) 옆에 있는 청룡암 전면에 새겨져 있다.

 목판에 새겨진 「청룡암 시」와 「범어사 증도원산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청룡암 시(靑龍巖 詩)」


덕수이거사(德水李居士)[덕수 땅 이 거사]

내산정상인(萊山晶上人)[동래산 혜정 상인]

구학양한신(丘壑兩閑身)[산수 즐기는 한가한 두 사람]

소석태점극(掃石苔粘珖)[바위를 밟으니 신발[나막신]에 이끼 파랗고]

관송로숙건(觀松露塾巾)[소나무를 보느라 두건에 이슬 젖는다]

창애백천겁(蒼崖百千劫)[수만 겁 내려온 푸른 바위에]

신집시전신(新什是傳神)[이제 새로이 문장을 새기네]


만력기유육월(萬曆己酉六月)[만력 기유년(1609) 6월]

동악(東岳)


「범어사 증도원산인(梵魚寺贈道元山人)」


석애태경입연비(石崖苔逕入烟霞)[바위 벼랑 이끼 낀 길은 안개 속으로 접어들고]

좌의송근간석휘(坐倚松根看夕暉)[소나무 뿌리에 기대 앉아 석양을 바라본다]

촉백일성산적적(蜀魄一聲山寂寂)[접동새 우는 소리에 산사는 적막하고]

전두삼십구년비(轉頭三十九年非)[돌이켜 생각하니 삼십구 년 내 인생이 어리석구나]


동곡(東谷)

이자민(李子敏)


 17세기 초에 판각(板刻)된 이 목판은 연대가 오래되었고, 동래부사를 역임했던 이안눌 부사의 친필 판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조선 후기 지방사 연구에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