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성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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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황실축원 장엄수

梵魚寺 皇室祝願 莊嚴繡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

지정일: 1999.09.03



범어사 소장 본 장엄수는 1902년(광무6) 10월 범어사의 산내 암자인 계명암(鷄鳴庵)에서 나라의 안녕과 황실의 번성을 위한 국제(國際)를 거행할 때 황실에서 범어사에 하사한 것으로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홍색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남색, 아래는 옥색 공단을 사용하였고, 금사와 명주실을 사용하여 평수, 이음수, 자련수, 가름수 기법 등으로 수를 놓은 한 쌍의 장엄수는 서원문을 제외하고는 기법, 문양, 재질이 동일하다.

장엄수의 구성법은 홍색 바탕의 가장자리에 금사를 사용하여 크고 작은 두 겹의 장방형 테를 두르고 그 중앙에 금사로 서원문을 수 놓았으며, 두겹의 테 사이에는 당초문을 장식 수로 놓았다. 윗 부분에는 중앙바탕과 같은 홍색 바탕에 녹색 실로 연꽃잎 문양을, 아래 부분에는 옥색 바탕에 갖가지 색실로 연꽃 문양을 수 놓았다. 윗 부분 양 쪽에는 복장의 의미로 향, 오곡, 경(經) 등을 넣었던 다라니 주머니 한 쌍이 각각 달려 있는데, 주머니는 다소 낡은 상태이다. 다라니 주머니 바깥쪽으로는 역시 한 쌍의 매듭이 장식으로 달려 있는데, 매듭의 일부는 뒤에 교체하였다.

금사로 수를 놓은 서원문은 각각 문조(文祖)와 신정황후 조씨의 명복을 비는 내용으로 {奉請文祖翼皇帝仙駕}와 {奉請神貞翼皇后仙駕}로 되어 있다. 문조는 순조의 아들로서 세자로 책봉된 이후 19세 때부터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였으나 4년만인 22세때 요절하였다. 아들인 헌종이 즉위한 후 익종(翼宗)으로 추존하였고, 1899년(광무3) 고종이 다시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추존하였다.

신정황후는 풍양 조씨 조만영의 딸로 헌종 즉위 후 남편이 익종으로 추존되자 왕대비로, 철종이 왕위를 계승할 왕자를 낳지 못하고 승하한 후엔 대왕대비가 되었다. 1890년 승하한 후 남편인 문조와 함께 1899년 신정황후(神貞皇后)로 추존되었다.

따라서 이 장엄수의 제작 연대는 두 사람이 추존된 이후 범어사 계명암에서 국제를 지낸 1899∼1902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궁중자수의 유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